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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횸정] 끊임없는 영업에 치인 횸정

sayak 2016. 2. 2. 10:49

물이 쏟아졌다. 중요한 서류들만 급히 챙기고 주변에 휴지를 뜯어 젖은 서류들 위로 쏟아냈다. 미리 챙긴 탓인지 중요한 서류는 괜찮았으나, 공책에 자필로 작성한 보고서는 잉크가 번져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휴지로 몇 번을 그 위를 꾹꾹 눌렀으나, 이미 번져버린 글씨는 제 모습을 찾기 어려워보였다. 머리를 감쌌다. 이게 며칠을 밤새운건데 씨발. 궃은 욕설과 함께 그 페이지를 찢어냈다. 종이를 구기고 다시 쓰려 펜을 들었을 때, 보라빛으로 번져있는 화학식 하나를 마주했다. 아, 아아. 좇같네 진짜. 

어라, 이거 내 글씨네.
입 다물어.

이효민이 써놓은 화학식이었다. 이것도 결국 이효민 탓이었다. 옆에서 비아냥대는 탓에 정신이 사나워서 실수한 것이니. 이효민새끼 때문인게 맞았다. 내가 씨발 다신 엮이기 싫다고 말했지. 이를 악물고 뱉어낸 분노에도 녀석은 아랑곳않고 방 이곳 저곳을 떠돌았다. 배고픈데 형, 밥은 없어? 이를 악물고 버티고 살아서, 겨우 마련한 원룸 안을 살피던 이효민이 침대 위로 누웠다. 회사원 형은 하던대로 하고 싶은거 하세요-. 입다물고 구경만 할게, 구경만. 한량하게 웃어보이는 모양새에 울화가 치밀었다. 

꺼져.
이야, 발묶어놓은게 누군데 나보고 꺼지래. 우리 자꾸 재미없게 굴지 말자.

분명 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만난 이효민은 주변을 맴돌며 나를 괴롭혀왔다. 짧은 손톱을 물어뜯었다. 널 만나는게 아니었어, 만나는게 아니었다. 내 폭탄을 네게 주는 것이 아니었다. 잘못했다며 울고 빌어도 녀석은 끝까지 내 주위를 맴돌았다. 파열음, 뜨거움, 화약냄새. 그것에 미쳐서 내 지식을 쏟아부어 폭탄을 제조하고 스스로 터뜨릴 수 없어서 대신할 인물을 찾았다. 몇몇에게 보냈으나, 불발되는 탓에 널 찾은 내 잘못이었다. 현장에서 맡을 수 있는 화약냄새가 좋았다. 검게 피어오르는 연기는 성공적인 폭탄제조를 의미했다. 그래서 널 곁에 두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시작이 나였으니, 끝도 내가 낼 수 있을 줄 알았지.

형, 날 만난걸 후회해?
...
난 존나 좋았는데 형 만나서.
...
아-,존나 재밌었는데.

낄낄대며 비아냥거린다. 형도 짜릿했잖아, 안그래? 부아가 치밀어 마주했다.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자꾸 보이는거 아니야. 이효민의 실체가 사라졌다. 형상화된 이효민은 일그러진채였다. 얼굴 곳곳에 난 상처로 기괴하게 웃으며 유혹했다. 우리 큰 거 한판만 더 할까? 그래서 내가 여기있는거 아니야? 

가장 큰 폭발이었고 화약냄새가 진동하던 밤이었다. 두 손은 피투성이었고, 모든 폭탄은 그 날, 사라졌다. 짐승같이 굴러오다 이제 살아갈 길을 만들었던 참이었다. 이효민의 꿈이었던 사망신고는 내 스스로 해주었다. 내 마지막 꿈을 덕분에 실현했으니, 네 꿈도 실현시켜주기 위함이었다. 말리기 위해 몸싸움을 했고 건물을 뛰쳐나온 순간 폭탄이 터졌다는 진술도 했다. 이효민의 거주지에서 발견된 화학식은 이를 바탕해주는 증거자료가 되었고 그렇게 이효민의 바람대로 세상에서 그의 흔적은 지워졌다. 사망신고를 하는 관계란에는 '목격자'라는 글씨를 새겨넣었다. 

고등학교 때 화학선생님은 이틀, 그 날의 그 형사는 하루였다. 그리고 너는 그 일이 있은지 1년이 지난 오늘도 내 주변을 맴돌며 괴롭혔다.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 널 끌여들이는게 아니었다. 

큰 거 한판만 더 할까?

끈질기게 괴롭히며 나를 유혹했다. 끝까지 아니라는 대답은 안하는 것 봐. 낄낄대는 웃음소리가 커졌다. 물이 쏟아져 보라빛으로 번져있는 화학식이 눈 앞의 잔상으로 남았다. 물이 쏟아졌다. 지워지지 않을 정도로 진하게, 물들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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