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K

[연우호영] 권태

sayak 2016. 3. 2. 14:28

어쩌면 당연하다. 라고 생각했다. 호영은 화면이 검게 물든 폰을 덮으며 생각했다. 제 연인인 연우의 목소리에서는 지친 기색이 묻어나왔다. 왼손 네번째 손가락. 화보를 찍을 때에도, 앨범 자켓을 찍을 때에도 예능스케줄을 비롯한 어떤 방송 스케줄에도 빼지 않았던 반지. 호영은 반지를 어루만졌다. 우리가 헤어지게 된다면.

결국 몸이 멀어지면 마음이 멀어진다.라는 말에 두손을 들게 된다면. 나는 이 반지를 빼야하겠지. 호영은 무릎을 끌어안았다. 어둠속에서도 빛이 나던 그와 나의 반지는 어쩐지 파리한 빛을 내고 있을 뿐이었다.



#



오늘은 어땠어?

그래, 난 자야겠다.

내일 또 연락하구.

...

..

..응.



#



그냥요, 똑같았어요.

아, 피곤하죠. 죄송해요. 저도 자야겠어요.

네.

...

저, 안녕히 주무세요.

..

...네.




#



머리가 지끈거렸다. 오전 내내 집중하지 못한다는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간간히 무슨 일 있는거냐는 걱정에, 무슨 일 있으면서도 차마 말할 수 없는 답답함에 숨통이 막혔다.

"호영아."

이번엔 리더 형의 잔소리인가. 차량에서 잠깐 누워 눈을 붙이던 호영이 부스스 일어났다. 촬영 끝났어요? 화제를 돌려보려했지만 준의 눈이 완강하여, "죄송해요." 라는 사과를 건넸다. 오후 스케줄 부터는 정신차리고 할게요. 요새 통 잠을 못 자서 그래요. 안그래두 매니저 형...

이어지는 호영의 변명을 듣던 준은 채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호영의 이마에 손을 뻗었다.

"열 있네."

평소에도 저를 친동생처럼 챙겨주던 형이었다. 호영은 새삼 그 손길이 따뜻하다는 생각을 했다.

"아프면 말을 해라, 사람 걱정시키지말고."

툭툭, 이마께를 두드리는 손길에 그만 호영은 그 '무슨일'에 대해 말할 뻔했다. 형이라면 날 위로해주지 않을까 싶어서. 

"응. 나 조금만 쉴게요, 형."

"그래라."

호영은 그때 잠시 못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




자요?

아직 12시 인데..

오늘 되게 실수 많이 했어요.

형 목소리 듣고 싶어요.

...

...

보고싶은데.



잘 자요.



#



연락이 안된지 일주일 하고도 또 하루, 호영은 핸드폰 홀드를 몇번 켰다가 끄기를 반복했다. 꺼놔야겠다. 전원키를 길게 누른다. 검어진 화면에 비춘 제 얼굴을 본다. 아이돌은 얼굴이 생명인데. 표정에서 묻어나오는 피곤함을 마른세수로 애써 씻어내려 했다. 스케줄 준비하자! 리더형의 목소리에 침대에서 일어나 발을 딛는다. 창 밖은 새벽, 그는 아직 밤이겠지. 눈 어딘가를 짚는다. 해가 뜨지않은 하늘 어딘가를 보며 묻는다.


그만..해야할까요..


호영의 반지는 이제 전과 같은 빛을 바라기엔 무리가 있어보였다. 호영은 반지를 빼내, 책상서랍에 넣었다. 6주년을 앞둔 우리는, 어딘가 불안정하고 서로에게서 헤메이고 있다. 호영은 방을 떠났다. 



#



호영아.

전화기 꺼져있네.

...

형 한국이야.

...

잠깐 보자.

...



#



몇년만이더라. 한국에 발을 딛은 연우는 해를 셌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5년만인가. 그러고보니 이맘때였던 것 같다. 여길 떠난 것도. 울지 않으려 코끝이 벌건 호영이를 제가 달래며 떠났던게. 갈때는 시끌벅적했는데 올때는 어째 조용하다. 저멀리 진우가 손을 든다. 연우는 옅게 미소를 띄우며 진우와 인사했다.


"오랜만이네." 

"얼굴 까먹을 참이었는데."

"까먹기 전에 와서 다행이네~."


진우가 작게 웃음을 흘리며 연우의 머리를 때리는 시늉을 했다. 


밥은, 기내식 먹었어, 유럽은 재밌었냐, 응 배울것도 많구...


인천공항을 빠져나가면서 짧은 물음과 짧은 대답이 이어졌다. 연우는 내내 웃고 있었다. 그 모습에 진우는 진작 묻고싶던게 있었으나 적당한 말을 골랐다. 


"연락은"

"응?"

"연락했냐고 아이돌새끼한테."


진우가 처음 떠올랐던 물음은 너네 헤어졌냐 였다. 생각보다 멀쩡해보이는 연우와 다르게 그 아이돌이란 놈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해맑고 까불던 새끼는 어디가고 축 쳐지고 비맞은 강아지같은 모양새로 이곳저곳 제가 우울하다는걸 광고하고 다녔기 때문에 진우 역시 둘의 관계를 어렴풋 짐작할 수 있었다.


"폰 꺼져있더라."


차에 다다랐다. 트렁크에 짐을 싣으며 연우가 답했다. 호영이 아이돌되서 잘나가더니 바쁜가봐. 여전히 연우는 웃고 있었다. 보조석에 앉은 연우가 폰을 꺼냈다. 여전히 연락은 없었다. 이쯤되면 연락했을텐데. 연우는 폰 액정을 여러번 쓸었다. 진우는 그와중에 햇빛에 반짝거리는 그들의 반지에 다시 인상을 찌푸렸다. 차가 출발했다. 


"형, 나 먼저 들릴 곳 있어."



#



바빴다. 컴백 초읽기에 들어갔기 때문에 몸이 두개라도 모자란 지경이었다. 호영은 사는게 바빠서 그를 보고싶은 마음 마저 뱉을 수 없길 바랐다. 그래서 더욱이 자신을 괴롭혔다. 잠이 오지 않는 새벽까지 붙잡고 가사를 쓰거나, 남들이  떠난 뒤에도 안무연습에 몰두하였다.


"무슨일인데."


그러나 바쁜 틈 사이로 약해진 마음들이 새어나와 일상을 흐트러뜨린다. 계속되는 안무실수에 뮤비촬영이 딜레이되 었다. 리더가  호영을 잡고 묻는다. 혼을 내는건지 걱정을 하는건지 애매한 경계의 눈빛을 보며 호영은 복잡한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냥, 요새 잠을 못자서 그래요. 정신차릴게요. 라는 말을 번복했다. 


"애인이랑 잘 안돼?"


여즉 저를 쳐다보는 그 눈빛을 마주했다. 호영의 눈이 커졌다.


"나 너 연애하는거 진작에 알았는데."


준의 손길이 호영의 머리위로 내렸다. 원체 눈치가 좋고 따뜻한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돌이라면 금 기시 되어있는 연애를 눈치채고 있었음에도 리더가 눈을 감아줬다. 호영은 또 한번 눈빛이 흔들렸다.


"멀어서요."

"오래되기도 했고,"

"그만해야 할까요?"


머리에 닿는 따뜻한 손길에 멋쩍은 웃음을 흘렸다. 준은 호영의 머리를 가만 쓰다듬어주다가 호영아. 하고 따뜻하게  불렀다.


"밤에 잠이 안 올때."

"내가 자장가 불러줄까?"


호영과 준이 마주본다.


"형은 네 옆에 있었는데."

"매일."


아, 고백이구나. 호영은 그제야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촬영 들어가자. 매니저가 호영과 준을 불렀다. 힘들면 말해. 호 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까이 있었구나, 형은. 호영의 머리는 이제 다른 생각으로 가득찼다.



#



익숙한 머리통과 낯선 사람의 뒷모습, 그리고 마주잡은 손을 본다. 연우는 다시 한 번 전화를 걸었지만 여전히 호영의  폰은 꺼진 채였다. 절망감에 머리를 짚었을 때, 호영의 손에 반지가 없는 것을 깨달았다. 머리를 짚은 손 위의 반지가  햇빛에 반짝였다. 연우는 뒤쫓던 발걸음을 멈췄다.


"호영아"


호영과 낯선 사람도 발걸음을 멈춘다. 당황함이 역력한 표정으로 연우와 마주한다. 


"형, 한국엔 언제…."

"그게 중요한게 아닌 것 같은데."


연우는 아직 맞잡고 있는 손을 보았다. 그 시선을 따라 옮기던 호영은 서둘러 손을 풀곤 낯선 사람을 보내자, 저를 두고  누구냐 묻는다. 연우에게는 저 목소리가 익숙했다. 호영의 방송을 일일히 챙겨본 연우에게 저 낯선이의 음색은 귀에  익어왔으니. 멤버구나. 그렇게 정의내린 후 떨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호영은 그와 연우를 번갈아 보더니 곤 란한 얼굴로 답했다.


"그냥 아는 사람이에요."


손에 힘이 빠지고 머리가 핑돌았다.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경험했다. 아는 사람. 연우는 제  손의 반지를 한 번, 호영의 빈 손을 한 번 번갈아 보며 주먹을 쥐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연락이 소홀하고 우리는 이제  서로보다 일상을 먼저했다. 서로가 있음에도 우리는 외로웠고, 우리의 관계는 시간에 쫓겨 위태로웠다. 나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고, 너 역시, 나의 권태를 눈치챘을 것이다.


"호영아."

"한국은…언제 오신거에요…?"


낯선 이가 떠나고 호영은 연우의 앞에 섰다. 매체에서만 보던 호영을 실제로 보는 것은 오랜만이라 그런가 어쩐지 낯 설어졌다. 아니 사실 나는 지금 네가 낯설다. 우리는 위태로웠다. 그러나 우리가 끝이날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어 긋난 시간들이야, 다시 바로 잡으면 된다.


"너, 반지는."


어지러운 마음을 정리했다. 쉽게 우리를 연인이라 할 수 없는 너를 안다. 그러므로 난 이해하려 했다. 이해할 수 있었 다. 호영은 제 빈 손을 한 번 보다가 안절부절하지 못하고 모자를 더욱 눌러 썼다. 연우는 화를 내지 않으려 애썼다. 다 정하게, 어긋난 시간 속에서 상처받았을 네게, 다정하게. 


"호영아, 보고싶었어."


연우는 억지로 웃었다.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도, 형을 만나서, 또 차를 타고 너에게 오기까지. 연우는 계속 억 지로 웃은 채였다. 늘상하던 미소를 띄우고, 제 감정은 숨기고. 보고싶었다는 말에 왈칵 눈물이라도 터뜨릴 줄 알았던  너는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이 없었다. 너를 만나면서까지 난 억지로 웃는다. 우리가 이러려고 만나고 있던게 아닌데.  서로를 숨기려고 만난게 아닌데. 


"그래서 왔어. 오늘."

"…연락이라도 하고 오시지…"


그리고 여전히 호영인 날 보지 않았다.


"했는데, 폰 꺼져있더라."

"저번주는 왜 연락 안됬어요?"

"……."

"계속…,계속 연락했는데"

"……."

"안 받으시길래 꺼놨어요."


하루종일 폰 붙잡고 있으면 안되잖아요, 저. 신경쓰이는게 싫어서. 연락하실 줄 알았으면 폰 켜놀걸 그랬네요. 자꾸,  자꾸…. 제가 비참해져서요. 고개를 숙인 채 말하는 호영 탓에 어떤 표정인지 확인할 수 없었다. 표정을 보려 살짝 숙였지만, 모자의 챙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연우는 호영의 말에 대한 답으로 바빠서.라고 변명을 하려했다. 그러나 입을 떼는 순간, 고개를 든 호영이 울고 있어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형, 나는요."

"……."

"제가 좋아한거니까 괜찮았어요. 그래서 우리가 멀리 있어도 제가 좋아하니까. …근데 우린 너무 멀고, 또 너무 오래됬어요."

"……."

"조금만, 일찍 찾아와주시지 그랬어요."

"호영아."

"나는 형이 보고싶어서 몇번이고 연락했는데. 가고싶어도 못 가는게 수번이었는데"


호영은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 머리위로 손을 뻗으려다가 말았다. 너는 끼고 있지 않지만 내 손에는 존재하는 반지때문에. 이 반지로 인해 네가 죄책감을 뒤집어 쓸까봐. 대신 쏟아지는 네 설움에 아니라고 반박을 하려했다. 나라고 네가 안 보고싶었던게 아니라고 절대 널 좋아하지 않은게 아니라고. 



"근데 저 이제 형을 안 좋아해요."



그리고 네 고백에 모든게 먹혔다.



"그래서 우리가 너무 먼게 힘들어요."



나는 다시 핑 도는 머리를 견뎌야했다.



"그만해요, 우리."




네 말과 함께 우리의 6년 남짓한 시간들은 끝이 났다. 나는 고작 호영아, 하며 널 부르는 것 밖에 하지 못했다. 지쳐있 는 네게 우리를 강요할 수 없었다. 네 말대로 우리는 너무 멀었다. 우리는 위태로웠다. 바로잡을 수 없었다. 나는 널 홀 로 두었다. 그렇기 때문에 멀어져가는 널 잡을 수 없었다. 


연우는 한참 그 자리에 서서 억지로 웃었던 시간들을 반성해야했다.



#



일주일 내내 앓다가 울다가 했다. 형이 돌아갔을지도 모르겠다. 눈물이 가려서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도 보지못했다. 그저 호영아, 하는 그 목소리가 다정했다. 헤어질때 더 다정한 사람이 덜 사랑한 것이다. 호영은 그런 말을 떠올리며 밤새 꿈을 꾸다가 깨다가 했다. 지난 시간동안의 우리를 정리하기가 벅찼다. 리더형은 몇번이고 내 걱정을 했다. 호영은 여전히 핸드폰을 켜지 못했다. 


 형, 나는 그사람이랑 헤어지고 싶던게 맞을까요. 종일 그사람 생각에 아픈데 이걸 앞으로도 견뎌낼 수 있을까요. 


호영은 여러말들을 삼키며 홀로 시간을 죽였다.



#



잠깐 보자

호영아

형 내일 비행기야.

이번에 가면 아주 안 오려구.

그니까 아주 잠깐이어도 되니까

우리 잠깐만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