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불명
태양은 느리게 바다 너머로 가라앉았다. 달빛이 은은하게 세상을 비추는 밤이. 그런 달빛만이. 검은 세상 속, 달빛만이 존재하는 밤이 계속 되고 있다. 레이겐은 창문을 닫았다. 태양이 떠오르지 않는다. 지친 눈가를 몇번이고 눌렀다. 밤이 계속 되고 있었다. 사무실도 가야 하는데. 레이겐의 좁은 방까지 내린 어둠에 몸을 일으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이게 무슨일이지.
레이겐은 다시 이불 위로 몸을 뉘였다. 애써 챙겨입은 양복이 구겨진다. 주먹을 몇번이나 쥐고 편다. 하하, 꿈이 너무 길잖아. 레이겐은 덧없이 웃었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았다. 다시 몸을 일으켰다. 거울을 보며 옷 매무새를 정리했다. 그리고 집을 나섰다. 동이 터오는 새벽에 걷던 길을 까마득한 밤, 달빛에 의존하여 걷는다. 제 사무실에 도착했다.
아무도 없다.
핸드폰을 들었다. 이상한 날이 되더라도 이 사무실만은 정상적으로 돌아가야했다. 몇 없는 연락처를 뒤지는데 어쩐지 모브의 번호를 찾을 수 없다. 삭제했나. 아니, 그럴리가 없는데. 모브의 집으로 갈 채비를 했다. 사무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밤이 기약없이 깊어간다. 그러므로 레이겐은 사무실의 문을 걸어 잠궜다.
거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 밤이 무서워 나오지 않는 탓일거다. 빠르지 않은 걸음으로 밤을 걸었다. 익숙한 모브의 동네에 다달았을때, 모브의 집 앞에서. 리츠와 모브와 에쿠보를 맞닥뜨렸다.
"모브."
"..."
"너 인마 이렇게 말없이 안 나오고 말이야."
모브의 까만 눈동자가 레이겐을 향했다. 리츠가 레이겐을 막아 선다. 뭐야, 당신 누군데. 눈빛이 매섭다. 모브의 눈동자가 밤과 같다. 달빛이 너무 희미한 탓일까. 모브는 그를 스승으로 모셨다. 그런 모브가 그를 잊을리는 없었다.
"뭐야."
낯선 이방인을 보는 눈동자들이 레이겐의 주변을 휘감았다. 하하, 이게 뭐야. 레이겐은 차오르는 헛웃음을 그대로 흘렸다.
"모브, 난 네 스승이야."
모브가 눈을 깜박였다.
"죄송해요."
"..."
"사람을 잘못보셨나봐요."
달빛마저 사라진다. 어둠 속에 갇힌다. 왜인지 수위에게 빙의한 모습인 에쿠보가 입을 열었다. 손가락으로 레이겐을 가리키며 비웃었다.
"저거 사기꾼 아냐?"
하하.
아 이것은 꿈이구나. 매번 강하게 자신을 다그쳐 오느라 차마 신경쓰지 못한 상처가 키워낸 꿈일 것이라 짐작했다. 레이겐은 어둠 속에서 느리게 눈을 감았다가 뜨며 아무렇지 않게 웃었다.
"에쿠보."
"아무리 내 꿈이라지만,"
"너 정말 못생겼다."
에쿠보의 얼굴이 구겨졌다. 레이겐은 더이상 그들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어둠을 향해 말을 거는 건 무모한 일이었다. 레이겐이 만들어낸 꿈 속, 그들은 레이겐을 기억하지 못했다. 아마도 내 꿈이 나를 외롭게 하려 했던 것 같다.
별로.
레이겐은 동요하지 않으려 했다.
평소처럼 하면 돼.
이게 원래 내 일상인데. 레이겐은 꿈도 참 이상한 걸 꾼다는 생각을 했다. 다시 집으로 향했다. 가장 먼저 쓰레기통부터 비웠다. 그리고 빨래를 정리하고 새 이불을 꺼내고, 그 위로 지친 몸을 뉘였다. 온종일 밤인 탓인지 끊임없는 피곤이 몰려왔다.
푹 자자. 자고 일어나면 깰 꿈이다.
레이겐은 눈을 감았다.
아직 밤이다. 태양이 떠오르지 않는 밤. 레이겐은 개의치않고 사무실로 향했다. 레이겐의 일상은 변하지 않았다. 다만 좀 더 전으로 돌아갔을 뿐이었다. 모브를 만나기 전, 리츠를 알기 전. 에쿠보를 만나기 전으로.
원체 혼자 해왔던 일상이여서 레이겐은 괜찮다 생각했다.
그런 밤이 며칠째 계속 되었다. 레이겐은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펜을 두드렸다. 어둠이 익숙해질 즈음에는 알 수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넌 그들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해.
레이겐은 창문을 닫았다.
넌 모브의 스승이 될 자격이 없어.
레이겐은 담배를 물었다.
네
가
모
브
를
묶
어
두
고
있
어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
모
브
는
사
실
스
승
이
필
요
없
어
레이겐은 담배를 피려던 것을 관두었다. 사무실의 거울 앞에 서서 옷 매무새를 만진다.
그
누
구
도
너
를
사
랑
하
지
않
아
"아니."
의문의 목소리가 멈췄다. 레이겐은 주먹을 쥐었다 폈다.
"내가 모브의 스승인게 아니야."
큰 파열음과 함께 거울은 산산조각이 되어 바닥에 흩뿌려진다.
"모브가 나의 제자인거다."
어둠에 균열이 생겼다. 달빛인듯 했는데 자세히 보니 태양이다. 오랜만의 빛이 눈부셔 손을 들어 눈을 가렸다. 아주 저멀리 아득한 목소리가 들린다. 이제 내 꿈에서 깨어나겠구나. 하고 레이겐은 생각했다.
"아."
눈을 뜨니, 사무실이다. 레이겐은 자리에서 일어나 쳐놓았던 커텐을 젖혔다. 해가 아직 떠 있었다. 사무실에는 탁자 위 모브가 어질러놓은 듯한 숙제와, 까만 눈동자의 모브가 그 옆 쇼파에 앉아 있었다.
"꿈이구나."
"꿈이요?"
그 앞의 앉아 있던 에쿠보가 물었다.
"어이, 악몽이라도 꾼거야?"
아, 돌아왔구나.
"우는거냐?"
에쿠보가 레이겐의 앞으로 다가간다. 에쿠보는 여전히 수위에게 빙의한 채였다. 레이겐은 꿈 속의 에쿠보와 지금의 에쿠보를 기억하며 두 눈을 감춘 손을 내릴 수 없었다.
"뭔일이야. 정말 악몽이라도 꾼거냐?"
"누구에게도."
"사랑 받지 못하는 꿈을 꿨어."
레이겐은 눈을 감고 진정하려 했다. 에쿠보의 손이 레이겐의 그런 손을 끌어 내렸다.
"애냐."
레이겐은 억지로 현실과 마주한다. 그리고 일그러지게 웃었다. 에쿠보는 꿈에서나 여기서나 못생겼네. 모브의 까만 눈동자가 여즉 자신에게 닿아있다. 레이겐은 이제 그 눈동자가 자신을 삼키는 상상을 하지 않아도 됨에 안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