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온다
이쯤에서
너도 왔으면 좋겠다
보고싶다
-비가온다, 김민호
밝던 하늘이 금세 어두워졌다. 무겁던 구름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이어진다.
머리 위로 툭툭, 어깨 위로 툭툭. 젖어간다.
아, 비가 오는 구나.
손을 뻗어 빗방울을 손바닥에 담았다. 작게 만들어진 호수의 수면 위로 끊임없는 파동을 만들어낸다. 자꾸 눈이 감겼다. 다시 길을 걸었다. 무거워진 옷이 발걸음을 잡는다.
빗소리가 크다. 마음이 시끄러웠다. 고개를 들었다. 빗줄기가 시끄러운 속으로 들이친다.
꼭, 그날과 같은 그림이 눈앞에 그려져 있는 듯 했다. 얼굴을 대강 닦아내고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집에 돌아가자, 돌아가서…,
돌아가서….
방이 어두웠다. 젖은 양말을 대강 벗어놓고 욕실로 향했다. 샤워기의 물을 틀었다. 비에 젖은 옷 위로 따뜻한 물이 쏟아졌다. 무릎을 굽혀 샤워실 바닥에 쪼그려 앉았다. 물줄기가 엉뚱한 벽으로 향했다. 무릎을 끌어안았다. 물에 젖은 옷이 차가웠다. 배수구로 끊임없이 물이 흘려 들어간다. 물줄기가 벽에 부딪히는 소리가 이어졌다. 소름이 돋은 팔뚝위로 젖은 머리칼이 닿았다.
몸이 무거웠다. 열이 나는 것도 같다.
그러나 바깥은 빗소리가 들릴까 두려워 차마 일어서지 못했다.
*
파란 우산이 시야에 팡하고 터졌다. 장마 시작된 지 몇 주째인데 아직도 맨 몸이냐는 목소리가 들렸다. 머리 위의 우산을 한 번, 목소리의 주인공을 한 번 보다가 그저 웃었다. 웃음이 나오냐고 핀잔을 주지만 그것도 좋았다. 멋쩍어 시선을 피하는 그 까만 눈동자나 하얀 티셔츠와 거무죽죽한 하늘 위로 뻗어있는 파란 우산도 좋았다. 각자의 색 위로 회색을 덧대는 오늘과 같은 날에, 매번 들고 나오는 그의 우산은 선명하게 색을 빛냈다.
오늘도 나의 그림 위에는 파란색 우산이 덧그려질 것이다. 우울을 그리던 캔버스 위로 파란 물감을 짜 놓는 것만으로도 죽은 그림이 살아나는 것 같았다.
네 왼쪽 어깨가 젖어간다. 우산이 기울어졌다. 마음이 간질거렸다.
빗줄기가 우산을 두드렸다. 눅눅한 공기 탓인지 비가 오는 와중에도 열이 올랐다.
푸릇하던 새싹 위로 꽃봉오리가 맺히고, 분홍의 꽃잎이 하나 둘씩 장면을 메꾸었다가 바람에 흔들리던 꽃잎들이 쏟아져 바닥 위로 떨어지고, 하이얀 꽃이 피어나고, 구름은 먹을 품어 흐린 색을 내고, 말갛던 하늘의 채도는 낮아지고 쏟아지는 빗방울에 꽃잎은 색을 잃는다.
시간에 따라 변해간다. 자연이 섭리에 따라 꽃을 틔우고 다시 져버리듯, 변해가는 주변은 그대로 두었다. 호기심을 가지고 다가왔던 인연들이 차갑게 등을 돌려도, 흰색의 감정을 가졌다가도 비가 오면 다시 공허하게 비워 냈다. 시간이 지나면 다 변하는 것이라며 마음 쓰지 않으려 했다.
변함없이 내 옆에서 파랑을 보여주는 너만 아니라면 그러려고 했다.
처음, 내게 다가온 너를 기억한다. 그리고 여전히 우산 아래에는 너와 내가 있다. 파랑이 눈앞에서 일렁인다. 우리는 대화없이 빗속을 걸었다. 네 우산은 색이 바래지도 않은 채로, 한참을 내 머리위에 있었다. 네 목소리는 떠나지 않고 내 주변을 맴돌았다.
텅 빈 마음에 자꾸 너를 채운다. 바닥에서 일렁이던 감정이 어느새 목까지 차올라 네게 쏟아낸다.
‘좋아해.’
힘껏 외쳤으나, 시끄러운 빗소리에 묻힌 듯 했다.
*
비는 계속 창가를 두들긴다.
목소리는 아직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비가 온다.
일정하게 창가를 두드리는 빗소리가 하나씩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이불을 덮었다. 이불 위로 물방울이 떨어진다.
그날의 목소리가 찾아왔다.
창문을 끊임없이 두드렸다.
*
만남에는 분명하게 이별이 존재했다. 누구보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는 네 모습에 이별이구나. 덤덤하게 받아들이려 애썼다. 내게는 익숙한 이별이었음에도 이름 한 번 묻지 못한 너와의 이별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후로도 나는 한동안 그림 위에 파란 우산을 그렸다.
그날 역시 비가 왔다. 오전에는 맑았던 하늘에서 하나 둘씩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나는 어느 때와 다름없이 네 생각을 했다.
비가 온다.
이쯤에서
너도 왔으면 좋겠다.
손을 뻗어 빗방울을 담다가 젖어버린 손을 대강 털어내고 셔츠를 머리 위로 썼다. 버스정류장까지 뛰어야 했다. 달리는 걸음마다 고여 있던 물이 튀었다.
찰박찰박하는 소리와 빗소리. 유난히도 차가 시끄러운 날이었다.
횡단보도 앞까지 뛰어오면서도 네 생각을 했다.
보고 싶다. 네가 왔으면 좋겠다.
신호가 바뀌기 전까지 버스정류장에 들어가 잠시 비를 피했다. 쓰고 왔던 셔츠의 물기를 대강 짜냈다.
머리에서 끊임없이 떨어지는 빗방울이 시야를 흐트러트렸다. 셔츠를 짜는 손을 놓지 않은 채 어깨를 슬금 들어 대강 눈 위의 물기만 닦아냈다. 비는 그칠 기미가 없어보였다. 머리의 물기까지 몇 번 털어낸 후, 평소와 다름없이 회색을 덧씌운 세상을 둘러봤다. 언제쯤 바뀌려나. 횡단보도를 마지막으로 봤을 때, 거짓말처럼 네가 서 있었다. 빗소리가 더 시끄러워졌다.
쿵쾅이는 마음속으로 들이친다. 끊임없이 파동을 일으킨다.
비가 온다.
네가 온다.
뛰는 건 너인데 내가 숨이 찼던 그 때, 유난히도 주변의 소리가 컸던 그 때.
네 파란 우산은 바닥을 구르고 빗방울은 끊임없이 내 안으로 들어찼다. 파랑이 요동친다. 무채색의 세상 위로 선명하게 색이 덧입혀졌다. 고인 물 위로 파동이 일었다. 붉은 물감은 어느새 내 발치까지 다가왔다.
나의 파랑이 붉게 물들었다.
잿빛의 그림 위에서 유일했던 색이 변했다. 웅성이는 주변에서 빗소리만이 또렷하게 뇌리에 박혔다. 비가 오고 있었다. 빗줄기는 계속해서 네 모습을 지워갔다. 비가 거세질수록 새파랗던 네 우산은 붉게 물들고, 네 모습은 투명해져갔다.
내, 눈앞의, 네가.
*
툭툭, 비는 계속해서 창문을 두드렸다. 선명하게 남는 기억에 다시 몸을 웅크렸다. 모든 것이 변하는 것처럼 나 역시 변했다. 내 방안의 캔버스와 보라색 물감이 그랬다. 나는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았고, 파란 물감을 쓰지 않았다.
비가 온다.
아무도 오지 않으니까.
비도 멈췄으면 좋겠다.
창문을 열었다.
창문을 두드리던 빗줄기들은 방 안으로 들이친다. 그 앞에 앉았다.
네가 왔으면 좋겠다.
빗줄기가 내게로 쏟아진다. 검은 우주로부터 쏟아지는 빗줄기를 맞으며 너의 카메라를 손에 쥐었다.
내가 그리는 그림, 네가 그리는 그림.
별이 내게로 쏟아지는 상상을 하고 나는 그 순간을 담았다.
네가 온다.
백업용
좀 오래전에 삼케 오락관에 올렸던 글
갑자기 설명충이 되고 싶어서
앞사람이 해놓은 그림을 보고 연성하는 거였ㄷ는데
우리끼리 정해놓은 키워드도 넣고 싶어서
몇몇 문장을 손대서 방향을 고친거시 있다
독백 - 글 전체를 한 사람의 독백으로써 이야기 서술을 하게 하고싶어씀
물,수면 - 그림에서도 그렇고 왠지 건조하지 않은 이야기를 쓴다 하면 비 내리는 날을 써야할것 같았다. 그래서 비가 내리는 날의 기억과 지금이 겹쳐서 물(비 혹은 샤워기의 물)이 과거를 곱씹게 하는 매개체가 되길 바랐음 화장실 바닥의 잠긴 수면이 그날의 물웅덩이를 떠올리게 하는..
꽃말 - 행복을 쓰고 싶어따 글에서 알게모르게 등장하는 산하엽 꽃의 꽃말은 행복잉데 결국 '너'를 만나게 되어 행복한 결말이라는 거슬 유추해보고싶었다 유추프라카치하(?
유성우 - 앞사람의 그림이 꽂혀서 쓰게 된 이유기도 한데 열어놓은 창을 통해 쏟아지는 빗줄기가 내게로 쏟아지는 유성우와 같은 모양새를 한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유성우를 보며 소원을 빌듯, 화자도 쏟아지는 비를 유성우라 생각하며 너를 만나길 소원한다 라는 느낌을 나타내고 싶었다
물논 이 모든 거시 페일이어찌만! 하하!!
앞에 넋님 그림이 되게 좋응데 허락을 맡지 않아쓰니 올리진 모타고 홈페이지도 핵예쁘지만 나만 연성한게 아니므로 올리진 않게씀
긍데 진짜 삼케이에는 존잘밖에 없음 나 뺴고
행복한 친구들,..행복한 덕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