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토도]우리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2016. 2. 1. 10:46우리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최근 나는 그런 말을 했다. 나에게도, 너에게도. 내가 바라던 건. ‘그러게.’하며 웃어버리는 네 미소 같은 것이 아니다. ‘미안해.’라며 무너지는 네 시선 같은 것이 아니다. 나는 네가 미워하길 바랐다. 왜 그런 말을 하냐며 욕을 하길 바랐다.
‘왜 우리의 삶만 이런 것이냐.’ 나에게 화를 내주길 바랐다.
내가 바라는 것은 형 같은 것이 아니다. 동생을 위한다고 뒤로 물러서는 네가 아니다. 나는 몇 번이나 네게 물었다. ‘그만할까.’ 너는 언제고 같은 답을 했다. ‘네가 편한대로 하자.’ 우리의 꽃은 타들어가는 중이었다. 너의 햇빛은 넘쳤다. 아름다움이 잠식되는 꽃은 쓸모가 없다. 나는 몇 번이고 네게 울었다.
“우리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어.”
안에 있는 너를 죽이게 될 마지막 질문. ‘너를 좋아하는게 아니었어.’ 모래가 차오른다. 나는 그것을 내게 뱉을까봐. 그것으로 우리가 끝일까봐. 멍든 꽃잎을 쥐며 울었다. 너는 다정한 형이니, 다정한 말로 나를 달랜다. 네 말에선 꽃 향이 나는데 왜 우리의 꽃은 시들었어? 우리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어, 네 동생으로 태어나는게 아닌데. 난 그러고 싶지 않았는데.
나는 색이 없는 꽃들을 좋아했다. 하얀 꽃들. 태어날 때부터 색이 없던 꽃들. 누가 물들여주지 않으면 그대로 하얗게 피어나고 질 꽃을 좋아했다. 토도마츠. 네 입에서 형체를 이루는 꽃은 색이 없었다. 나는 그 꽃잎들을 하나씩 모았지. 토도마츠, 토도마츠, 토도. 네가 부르는 흰 꽃잎의 조각들을 모았지. 그것이 붉게 물들어 갈 쯤 나는 그게 사랑인 것을 알았지. 우리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너는 나를, 그렇게 다정히 부르지 말았어야 했다.
이제야 우리를 되돌아본다. 우리는 입을 맞추기 전에 손을 잡았고, 손을 잡기 전에 서로에게 닿았고, 우리가 닿기 전에 나의 고백이 있었고. “좋아해.” 하는 내 말에 흔들림 없는 너의 눈빛과 “좋아하게 됐어.”하는 내 말에 다정하던 그 미소와. 우리의 시간. 순간. 액자없는 사진처럼 흘러간다. “고마워.”하던 네 목소리, 네 시간, 너의 순간. 사실 이제야 말하는데 나는 그 답이 이상했다. 나는 “고마워.”하던 널 보고 싶던게 아니었다.
어떤 노래는 우울감을 상기시켰다 그 우울은 차올라 우리의 관계를 잠식시켰다. 노래 가사 속에 우리를 그려 넣었다. 비극의 노랫말 속 우리가 어울려서 나는 이제 노래를 듣지 않음에도 우울감에 잠겨 우리의 끝을 그렸다. 그만할까. 그만하자. 너는 내가 어떤 말로 끝을 고백하면 ‘네가 원한다면.’이라는 말로 다정하겠지.
나를 버려줘, 저 쓰레기들과 같이.
나는 이 죄악을 고백했다. 너에게도, 형제들에게도, 신에게도. 다정한 너는 끝까지 자기 탓을 했다. 나는 그 말로 죄책감을 견뎠다.
우리는 서로의 흰 꽃잎을 쥐고 있다. 내 꽃잎은 이미 물이 들어서 미운 꽃이 되어버렸는데 네가 여러 번 망설이는 동안 너는 아직 흰 꽃을 쥐고 있다. 너의 사랑은 하얗다. 그래서 나는 너와 멀어지는 상상을 했다. 그만할까. 수십 번을 네게 물었다. 우리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어. 수십 번을 네 앞에서 울었다. 그럼에도 다정한 네 손길이 좋아 우리는 헤어지지 못했다. 바깥은 바람이 무서워. 나를 안아줘. 나는 그 말로 너를 묶었다. 넌 다정해서, 다정한 형이라서. ‘그래, 우리 동생.’ 했다.
우리는 우리만의 사각을 찾았다. 네가 나를 사랑할 수 있고, 내가 널…. 사랑할 수 있는 사각. 나는 너의 품에 숨었다. 내게 쥐어진 꽃잎과 흰 종이. 나는 그 위에 물들은 꽃잎 하나에 한 줄씩. 문장을 채 끝맺지도 못하고 지웠다. 우리를 위한 사각이 필요했다. 내가 숨을 수 있는 품이 필요했다. 나는 그때부터 네 온전치 못한 사랑을 견디지 못했다.
“나를 사랑해?”
“토도마츠, 나는 널….”
“동생으로서 말고, 나처럼 사랑하냐고.”
“내가 너를 사랑하듯, 너도 날 그렇게 사랑하냐고.”
다툼은 잦아지고 색이 다 지워지지 못한 종이는 구겨졌다. 나는 내가 숨을 수 있는 사각을 찾았다. 우리가 그 곳으로 가면, 내가 그 품으로 숨는다면. 바깥의 매서운 바람도, 형제들의 시선도, 신이 일컫는 죄악도. 모두 내 것이 아닐 것 같았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러지 못했다. 네가 날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카라마츠, 네가. 형이.
카라마츠, 나는, 이제와서 생각해.
차라리.
내가 널.
좋아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널 좋아하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안쓰럽네.”
우리가.
돌아가기로 했던 날이었다. 미쳤다고 몰아세우는 주변을 피해서 왔던 둘만의 공간에서. 다시, 집으로. 내가 그러자고 했다. 네가 너일 수 없던 시간들을 세며 그러자고 했다. 돌아가자고. 형제들에게 미안하다고, 결국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잠시 우리가 미쳤다고. 나는 그 생각을 하며 너를 봤다. 그리고 문장을 지웠다. 아니, 내가 미쳤었다고.
우리는 바다 위에 있다. 까만 밤바다, 터지는 빛, 꽃, 꽃잎. 잔잔한 파도소리가 온다. 우리는 말없이 모래 위를 걸었다. 나는 불꽃의 반짝임에 맞추어 널 정리했다. 불꽃 하나에 내 이름, 불꽃 하나에 네 이름, 불꽃 하나에 입맞춤. 너는 아마도 네 생각을 했겠지. 다정하게 나를 보느라 너일 수 없었던 순간들을 불꽃에 맞춰서 물들였다가 태웠겠지. 불꽃은 금세 터지고 말았다. 시들 시간도 없이.
꽃잎을 태운다. 새하얗던 꽃잎이 검게 물들어간다. 스치우는 바람에도 흑색이 묻었다. 그것이 내게 닿았다. 태운 꽃잎도, 검게 물든 바람도. 그리하여 나는, 고백의 끝을 맺기 위해 연필을 들었다. 우리가 우리를 모르게. 내가 나를 모르게. 네가, 너일 수 있도록.
“나는 형을 좋아해.”
“…….”
“그래서, 우리.”
“죽을까?”
내 꽃잎은 재가 되었다. 너는 끝까지 다정했다. 나는 그것이 슬펐다. 우리는 형제로 남기로 했다. 꽃잎은 다 태워 저, 불꽃을 삼킨 밤하늘마냥 까만 바다가 삼켰을 것이다. 흔적도 없이. 나는 내 안의 널 죽였다.
“너를 좋아하는 게 아니었어.”
이로써, 넌 너로 살아가겠지.
네 왼손으로 쓰는 글씨는 삐뚤다. 모났다. 펜이 제 멋대로 춤을 추고, 네 손은 그것을 바로잡지 못한다. 그래도 너는 왼손으로 쓴다. 나를 사랑한다. 너는 그렇게 쓴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지막을 너는 왼손으로 적는다. 삐뚤어진 고백에 눈을 감는다. 나는 매일 네게 꽃을 주려 했다. 너를 닮은 죽은 안개꽃을 선물하려 했다.
나는 그것을 우리가 붉게 물들일 것이라 생각했다. 안일하게도.
나는 널 사랑하지 못했다. 결국 나는 너에게 ‘사랑한다.’ 고백 한마디 못했다. 너는 사랑을 왼손으로 썼다. 그러나 나는 그것도 하지 못했다. 불꽃 터지는 날 밤. 너는 울었다. 찬 바닷바람에 코가 빨개지도록 서서.
‘네가 원한다면.’
나는 네가 무너지는 것을 본다. 난 결국 방아쇠를 네 손에 쥐어준다. 너는 네 안에 나를 죽였다. 모래바람이 일다가 말았다. 다시 일어날 모래바람을 피하기 위해 네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때 화를 냈던 것도 같다. 그러게, 우리는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우리는…. 우리는 왜. 우리는 왜. 나는 널 좋아하는데. 네 형으로 태어나고 싶지 않았는데. 네게 단지 형이길 원한게 아니었는데.
토도마츠, 우리는…, 우리는.
우리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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