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탬]꽃들은 왜 하늘을 향해 피는가
2016. 6. 17. 15:27Rubato - 네가 되어 내리는 비
꽃들은 왜 하늘을 향해 피는가
그리고 왜 지상에서 죽어가는가
그리고 왜 지상에서 죽어가는가
<김성규, 절망>
꽃이 졌다. 시들어버린 꽃잎에 맺힌 이슬을 바라보다가, 손을 뻗어 꽃 위로 작은 우산을 만들어주었다. 강한 빗줄기에 정처없이 흔들리던 꽃이 조금은 얌전해졌다. 꽃잎의 이파리에 맺힌 빗방울들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그럴때마다 꽃잎은 또 흔들렸다. 빗물이 고여, 웅덩이를 만들었다. 나는 손을 거뒀다. 꽃은 계속 흔들리고 있다. 계절을 바꾸는 암막이 내린다. 내 우산 위로도 쏟아지는 빗줄기가 도시의 소음에 섞여 들었다. 손을 뻗어 빗줄기를 담았다. 꽃잎이 흔들리던 것처럼, 얕게 고인 빗물이 흔들렸다. 우산을 거뒀다. 빗줄기가 온전히 나에게로 쏟아진다. 우중충한 하늘을 본다. 눈을 뜰 수 없어 눈을 감았다.
나는 밤마다 네게 편지를 쓴다. 매일 집을 나서고, 수업을 듣고, 비가 왔다거나 해가 쨍쨍했다거나. 달라지는 하루를 네 편지에 기록해두었다. 네가 읽지 못하더라도, 내가 기억하기 위함이었다. 하루하루 잊혀지는 기억들을 글씨로 남겼다. 종인아, 나는 네 이름을 불렀다.
괜찮냐는 물음을 세 번 들었다. 나는 그들의 눈빛을 잊으려 다시 펜을 들었다. 종인아, 나는 괜찮아. 괜찮은 것 같아. 괜찮지 그럼. 그들에게 하지 못했던 답을 네게 쏟아 놓는다. 어차피 네게 전해지지 않지만 괜찮다. 괜찮다. 나는 괜찮다.
담배를 배웠다. 내가 뱉는 숨이 검다. 속이 쓰다. 숨을 쉴때마다 불연듯 떠오르는 네가 지워질까. 연기 속에서 네 얼굴이 피어오른다. 나는 내가 어리석었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나는 담배를 끊지 않았다. 내가 뱉은 숨에 네가 섞여있다. 검게, 검게 물들어 공중으로 흩어져 버린다.
어젯밤은 네 일기를 찾아냈다. 나의 태양. 겨우 두 줄, 길어야 세 줄 남짓한 문장들이 한 권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 중에서도 내가 보고싶다고 가득 채워놓은 페이지를 찾았다. 다시 담배를 물었다. 오늘도 편지를 썼다. 검게 너를 뱉어낸다.
네가 쓴 일기장을 찾았어
보고싶은 줄 알았으면 달려갈걸
너는 이 문장들로 나를 그리며 어떤 생각들을 참아냈을까. 어떤 마음들을 삼켰을까. 담배를 지져 껐다. 이제 내 방에는 불빛이 없다. 내일은 비가 온다더라. 내일부터는 장마였다. 우산을 챙겨야지. 이번엔 글씨로 말고, 마음에 적어 넣었다.
너는 어머니를 꼭 닮았더라. 아직 남은 따스한 온기를 기억한다. 나는 그것이. 그 온기가. 그 따스함이. 너였다면.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곧 후회했다. 검은 연기를 태웠다. 어머니를 닮은 네가 방 안에 가득 찼다. 불을 켜야 하는데. 자꾸 가슴 한켠이 뜨거워져 차마 불을 켤 수 없었다. 나는 이제 네 목소리도 기억하지 못한다. 작은 불빛마저 꺼버린다. 그제야 나는 울 수 있었다.
숨을 참았다. 미련했다. 짧은 순간의 숨들이 배가 되어 목을 괴롭혔다. 자꾸 기침을 뱉었다. 숨을 참고, 눈을 감으면 네게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눈을 감으니 그날의 네가 자꾸 차에 치여 머리가 으깨졌다. 네 핏물이 네게로 다가오더라. 더 숨을 참을 수가 없어 나는 숨을 쉬었다. 너는 이 지상에서 죽었는데. 나는 살아있다. 너는 져버렸는데, 나는 버젓이 피어있다.
아직 네가 준 꽃은 살아있어. 나는 네 목소리도, 네 미소도, 네 따뜻함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저 꽃을 주던 날의 너는 기억해. 비가 내렸고, 꽃잎은 흔들렸고, 너는 울고 있었고. 우리에게는 우산이 없었지. 도시의 소음이 빗소리에 섞여 시끄러울 때. 너는 나를. 비에 젖어 볼품없었던 내 모습을. 너는 잘도 나를 좋아한다고 했지. 물에 젖어 볼품없는 꽃을 내밀면서, 꽃같은 나를 좋아한다고 했지. 아, 그 때 우리 웃겼을거야. 그치?
비가 그치지 않는다. 나는 핑계를 대며 학교를 나가지 않았다. 그래서 네게 쓸 편지가 없었다. 꽃이 며칠새 아픈 것 같아. 이러다 꽃마저 죽어버리면 어쩌지. 나는 학교를 나가지 않은 대신 공부를 하기로 했다. 사고 이후 멈춰버린 뇌를 열심히 굴려보았지만 역부족이었다. 나는 결국 책을 덮었다. 담배를 물었다. 너를 떠올렸다.
"세상에 낫지 않는 병은 없어요."
종인아,
"사고 후유증입니다."
종인아.
"스스로 기억을 고치는 거죠."
종인아.
"환자분에게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종인아.
"나을 수 있는 병입니다."
꽃병의 물을 갈아주었다. 꽃잎 위로 물도 몇방울 흘려주었다. 비오는 날에는 밖을 나가지 말라고 했다, 의사선생님이. 그래서 나는 우산이 있으니 괜찮다고 이야기했다. 의사선생님은 우산이 있어도 힘들 것이라 했다. 엄마가 또 운다. 머리가 아팠다. 엄마, 저는 종인이를. 의사선생님이 아직도 친구를 찾느냐 물었다. 엄마는 고개를 저었다. 내 병이 나아가는 것이라 이야기했다. 엄마는 손이 다 붉어지도록 십자가를 쥐고 있었다.
종인이가. 엄마, 종인이가 나 때문에.
차라리 눈을 감고 네가 여러번 죽는 걸 견디는게 나을 것 같았다.
종인아, 보고싶어.
꽃이 죽었다. 물을 갈아 준 것이 잘못일까. 내가 또 무엇을 잘못한 걸까. 밤새 고민하며 앓았다. 의사선생님은 원래 꽃은 시든다고 했다. 아, 원래 그렇구나. 나는 수긍을 했다. 시든 꽃잎을 손에 담았다. 집을 나섰다. 너를 찾아갔다. 네가 흘러간 강 위로 꽃잎을 수놓았다. 꽃잎을 보내고, 너를 부른 후에야 우산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이미 흠뻑 젖어버린 몸을 보며 생각했다. 볼품없다고. 우산이 없어 꽃이 자꾸 흔들렸다. 나는 기도를 했다. 우리가 행복하게 해달라했다.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간절하게 그를 부르고, 아멘을 덧붙였다. 우리는 하늘을 보고 있었으나, 천국에 갈 수 없었다. 꽃잎 하나가 물결을 따라 내게 돌아온다. 검은 수면이 내 발목을 적시더니, 허리께까지 차오른다. 너가 자꾸 차오른다. 찬 온도에 몸을 떨었다. 숨을 참았다. 눈을 감았다.
네가 또 나에게 고백을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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