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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11.09 [카탬] Rebirth

[카탬] Rebirth

2017. 11. 9. 14:06
 
10cm - Rebirth

바람이 차가워졌다. 눈이 내릴 것같은 날씨다. 하릴없이 소파에 앉아 공허함을 느꼈다. 주머니를 뒤적여 담배를 찾아 물었다. 불꽃, 타들어가는 담배의 끝. 폐 깊숙이 쓸쓸함이 내려앉는다. 공허한 공간에 연기가 가득 찬다. 푸석한 피부 위로 마른 세수를 했다. 면도할 때가 되었구나. 끝이 타들어가고 있다. 달력은 아직 7월에 멈춰 있다. 길게 태워진 담배를 지져 꺼버렸다. 그가 떠난지 두 계절이 흘렀다. 눈을 감았다. 그의 얼굴 위로 모노톤이 덧입혀져 그려진다. 초침소리 없는 고요함이 차갑다. 눈이 왔으면 좋겠다.

작업을 해야했다. 서재로 향했다. 오래된 서재에서는 매캐한 먼지 냄새가 났다. 책상 위에 포스트잇과 연필 따위가 어지럽게 놓여져 있다. 삐뚤삐뚤 써진 짧은 문장. 밥은 먹었어? 꺼진 모니터 위의 노란 포스트잇. 나긋한 글자를 바라보다가 차오르는 감정에 담배를 찾았다. 책상 위에 놓여진 담배. 그리고 제법 힘 주어 쓴 글씨. 담배 좀 줄여. 마음이 시끄러워졌다. 이마를 긁적이다, 서재를 나왔다. 지금 글을 써봤자 진부한 신파나 쓸 것이다. 진부하고, 유치하고, 한심한. 서재의 문을 닫았다. 목이 탔다.

부엌으로 향했다. 그리고 또 마주하게 된 포스트잇. 끼니 거르지마. 글자를 지나쳐 목을 축였다. 마른 세수를 했다. 그의 목소리가 머릿 속을 유영했다. 그 날의 목소리와 포스트잇 속 목소리가 어지러이 섞였다. 두통약을 먹어야 할까. 또 다른 그의 목소리가 있을 것 같았다. 약통 위에도. 티비 앞에도. 스위치 옆에도. 거울 앞에도.
허공에 그의 목소리가 가득 찼다. 약은 밥 먹고 먹어. 목소리 위로 색이 덧입혀 진다. 

그만하는게 맞아. 난 힘들어, 여기까지 하자, 누구든 행복하겠지, 우리 둘 중에 누구든 행복하겠지, 

종인아, 종인아, 그만하자 우리.

그는 엉뚱한 위로로 이별을 고했다. 누구든 행복하겠지. 몇 달을 앓아오던 원고의 마지막 문장이 채워졌다. 나는 아닌 것 같아. 내게 지쳐있던 그는 지금 나와 다를까. 무의식적으로 책상 위 담배로 손을 뻗었다가 그만두었다. 주머니 속 담배를 꺼냈다. 작은 불꽃, 끝이 타들어가고 있다. 끝 맺어진 문장이 어색하다. 더 수정하지 않고 컴퓨터를 껐다. 픽, 일일이 박혀있던 검은 활자들이 화면으로 번졌다. 수 없이 솎아냈던 글은 결국 어느 소설과 다름없이 진부해졌다. 우리의 끝도 소설과 같았다.


달력을 넘기고 멈춰진 시계의 바늘을 돌렸다. 짧아진 담배꽁초를 지져 불꽃을 꺼버렸다. 

그래, 누구든 행복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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