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이야기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귀에서 삐-하는 소리가 들리면 귀신이 지나간 거라고, 대화 사이에 섞여져 나온 이야기에 "아-소름 돋아." 하며 친구들이 제 팔뚝을 쓸어내리는 시늉을 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 그때의 난, '그런가.' 라며 건조하게 이야기를 넘겼던 것같다. 엉킨 얼음사이를 빨대로 휘저으며. 신기하네. 그러고 말 이야기였다.

 무료한 점심시간이었다. 깨끗이 닦아놓은 창 밖으로 바쁜 사람들이 보인다. 뭐가 그리들 급한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또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얽혀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나른하게 시간을 보낸다. 툭툭, 카운터 위로 올려진 손끝으로 일정한 소음을 냈다.

 맞아, 그런 이야기도 있더라. 종소리가 들리면 그건 저승사자가 온 거랬나?

 접때 했던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다시금 떠올랐다. 저승사자라도 왔으면 좋겠다. 가게 문에 달린 종을 빤히 바라봤다. 햇볕이 지나갈때에서야 한번 반짝하고는 아까부터 주욱 멈춰있다. 몸을 그대로 카운터에 엎드렸다. 늘어진 채로 유리 너머의 햇빛을 마주했다. 날씨 한 번 쨍쨍하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손님이 없지.

 용돈 몇 푼 벌어보자고 시작했던 아르바이트였다. 매장은 작았지만 정류장 앞이여서인지 꽤 오가는 손님도 많았다. 그러나 오늘은 왠일인지 손님이 없다. 음료수를 담은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와 차가운 에어컨 공기만이 휑한 매장을 메우고 있었다. 물품정리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몸을 일으켰다. 슬리퍼를 지익지익 끌어가며 직원용 사무공간이라 쓰인 문을 밀었다. 매캐한 창고냄새에 코를 쓱 훑다가 음료수 냉장고의 손잡이를 잡았을 때였다.

 '딸랑.'

 오랜만에 들리는 종소리에 재빠르게 발을 돌려 카운터로 향했다. 어서오세요오-. 정신없이 걸어왔으나, 카운터 앞에 서 있을거라 예상한 손님이 없었다. 조그마한 매장을 스윽 눈대중으로 훑어보아도 거울을 통해 곳곳을 살펴보아도, 종소리와 함께 찾아왔던 손님의 실체는 없었다. 뭐야, 문만 건들고 나간건가. 머리를 긁적이며 다시 창고로 향하려카운터를 벗어나는 순간, 또 아까와 같은 종소리가 들리고 삐- 하는 소음이 귓가에 울렸다. 아, 한껏 인상이 찌푸려졌다. 갑자기 울린 소음에 두통이 일었다. 다리에 힘이 빠져 의자에 털썩 앉았다. 넋이 나가 고개를 드니 차가운 바람이 머리칼을 스치고 지난다.

 그리고 눈안에 담긴건 윙윙 돌아가는 에어컨뿐이었다. 

 어라? 턱 끝에 간신히 매달려있던 물방울이 툭툭 카운터 위로 떨어졌다. 어라 나, 나 왜 울지. 알수없는 우울이 밀려왔다. 눈물은 금새 흘러 볼을 적시고 턱에 걸쳤다가 바닥으로 추락한다. 순식간에 저미는 감정에 속이 괴로웠다. 원인 모를 눈물을 한참 쏟아내다가 허공을 향해 시선을 두었다. 채 눈물을 닦지도 못하고, 어디를 향한 울음인지도 모르고. 허공을 바라보던 시야에 눈물이 차오르고 다시 흐르기를 반복했다. 

 에어컨 공기가 차다. 팔뚝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소매를 끌어 남은 눈물을 찍어 냈다. 겨우 감정을 누르고 나서야 불연듯이 그 이야기의 끝이 기억났다.

 그리고 그 두가지를 같이 들으면 전생의 연인이 나를 찾아 헤메다가 얼굴보고 미련없이 성불한거라더라.

 설마. 축축히 젖은 소매의 끝을 바라보다가 아직 눈물이 담긴 한숨을 뱉어냈다. 턱을 괴고 창밖을 봤다. 햇빛이 쨍쨍했다. 

 "설마."

 그러고 말 이야기였다.



(연우호영)
장노인이 그려줬던 만화 썰로 쓴거에여
https://twitter.com/HIjangnoin/status/478900524985483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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