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6- 말라버린 꽃이 다시 피지 않듯이



1. 장기매매AU

2. 연우가 죽었습니다

3. 캐붕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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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새하얗다. 구름이 피어올라 하늘을 가렸다. 구름은 아주 천천히 흐른다. 가만히 서서 지켜보지 않으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아주 잔잔하고, 또 느리게. 어디를 향하는 것인지 가는 방향의 끝을 찾았으나, 드넓은 하늘에서 그 끝을 찾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하늘 저 편을 바라보던 호영은 눈을 감기로 했다. 오늘따라 또 유난히 해가 반짝인다. 구름이 더욱 더 피어오르더라도, 하얀 구름은 결국 해를 가리지 못하는 것이다. 호영은 그 눈부심이 서글퍼서 그곳을 벗어났다.


"보스 오늘은 일이 없네?"


호영이 가방에서 꺼낸 돈 뭉치를 진우의 책상 위로 올려놓으며 말을 붙였다. 글쎄, 보스라고 하지 말라니까. 진우가 혀를 찼다. 아무렇게나 불러도 된다며. 호영이 느긋하게 덧붙였다. 그리고는 마치 제자리인 것 마냥 익숙하게 쇼파에 드러눕는다. 


"너 그 쇼파에 빨간 머리카락 다 털어놔라."

"아, 명령하지마아. 보스 아니라며?"

"너는 보스라고 부르니까 꼰대짓 좀 하자."


아아, 귀찮은데. 볼멘소리를 하며 몸을 일으킨 호영이 대강 손으로 쇼파를 털어내기 시작했다. 퍽퍽. 조금 힘주어 털어내는 모습을 보던 진우가 담배를 물었다. 담배냄새 배겠다. 호영의 목소리가 파묻혀 잘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진우는 연기를 내뱉으며 답했다. 이미 배어있어서 괜찮아. 호영은 입을 비죽였다. 자기는 뭐든 되는 모양이지. 그래놓고는 보스가 아니래. 호영이 볼멘소리를 냈으나, 이번은 들리지 않았는지 진우는 답하지 않았다. 


"…괜찮아."


단지, 끝말을 반복했다. 호영은 의미없이 소파를 때리던 일을 관뒀다. 진우는 조용해진 사무실 안에서 또 한번 덧붙였다. 


"괜찮아."


호영이 멈춰있었다. 그 공간에서 흐르는 건 진우의 담배끝으로부터 시작되어 방안에 머무는 연기밖에 없었다. 방이 뿌옇다. 그래서 호영은 진우가 저를 가려주기 위하여, 끊었던 담배를 물었다 생각했다. 진우의 담배 끝, 작은 불빛이 연기로 인해 희미해졌다. 호영은 주먹을 세게 쥐었다. 평소에는 그렇게 철없이 굴다가도 이럴 때는 애가 아닌척한다. 진우는 연기 너머의 호영을 짐작했다. 그를 처음봤을 때를 떠올렸다. 어딘가가 어긋난 분위기. 나이에 맞지 않는 교복과, 붉은 머리통. 촛점이 없는 눈동자. '그래서, 나 데려가려구?' 풍선이 크게 불어졌다가 터지며 새어나온 앳된 목소리. 해맑은 미소. 그때의 그는, 어렸으나 또 어려보이지 않았다. 


"아지트 갈거지."

"먼저 나가."


언제 다가온건지 평소와 같은 호영이 물었고, 진우는 답과 함께 담배를 지져 껐다. 아무렇지 않은 듯 호영이 웃었다. 담배연기에 질식해서 뒤지면 어쩌려구? 호영이 창문을 열었다. 해가 지고 있는지, 구름이 결국 해를 가렸는지. 밖이 어두컴컴하다. 주머니에서 껌을 하나 꺼내 물었다. 그리고 호영은 하늘을 보며 풍선을 크게 불었다가 터뜨렸다. 마담네 누나들이랑 놀아야지. 평소와 같은 가벼운 말과 함께 호영은 진우의 방에서 나갔다. 진우는 눈을 느리게 감았다가 뜨며 전의 호영과 지금의 호영을 떠올렸다. 담배연기가 아직 방에 자욱하여,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선명한 호영의 눈동자는 끊임없이 진우를 괴롭혔다.


"괜찮아."


분명 그녀석은 그리 말했을 것이다. 그 붉은 머리칼을 몇번이고 쓰다듬으며. 괜찮다고. 저는 괜찮다고. 진우가 새로 담배를 꺼내 물었다. 하늘이 우중충하다. 그 위로는 어떤 기억도 행복하게 그려지지 않아서 입안이 썼다. 진우가 다시 눈을 감았다. 


괜찮냐?


다소 불퉁한 물음에도 돌아오는 답이 없어서 진우는 몇번이고 쓴 연기를 삼켜야 했다.



아지트로 가는 걸음은 언제나 가벼웠다. 예쁘고 약에 취한 누나들이 많으니까. 용돈벌이로도 괜찮은 일이었다. 호영은 단물이 빠진 껌을 길바닥에 뱉어버리고는 주머니 속 포장해놓은 사탕들을 손으로 굴렸다. 해가 졌으니, 그 골목의 그녀들은 밖으로 향할것이다. 노랗지도, 파랗지도 않은 붉은 빛 아래에서 저들의 춤을 추며, 저들만의 몸짓으로 유혹을 하겠지. 'C'light'  빛으로 향한다. 낡을대로 낡아 더 빛나지 않는 네온이 가리키고 있는 가게로 들어섰다. C'light의 주인장이자 마담인 유리가 호영을 반긴다. 


"오랜만이네~"

"마담 새로운 거 있어?"

"물건? 아니면 여자?"


찾는 내용과 다르게 호영은 애같이 웃었다. 물론 물건. 마담은 말 끝을 늘이며, 준비해 둔 물건을 내놓는다. 찾을 줄 알았지이. 밉살맞지 않게 웃어보이는 모양새에 마담은 점점 예뻐진다며 칭찬도 잊지 않는다. 유리의 웃음소리가 높다. 호영은 마담이 준 물건을 챙겼다. 호영이 왔어어? 술에 취해 늘어진 목소리들이 복도에서 쏟아졌다. 그 목소리에 일일히 웃어주며 조금 더 깊숙이 들어섰다. 아주 구석진 곳. 호영은 새로왔다는 약을 종이로 말아서 입에 문다. 어둠 속에서 소음 하나에 작은 불꽃이 일었다가 다시 사그라들었다. 연기가 피어오른다. 깊숙이 들이마신다. 금세 연기가 좁은 공간에 가득 찼다. 희미한 시야 속에서도 그의 얼굴은 선명하게도 그려지기에, 호영은 눈을 감아 그것을 외면했다.


붉은 하늘 아래에 있다, 내가. 


호영은 아슬아슬하게 손을 뻗어 붉은 빛의 무언가를 손에 쥐었다. 뜨겁다. 아, 호영은 느릿하게 손을 떼어낸다. 제 손을 살펴보는데 자꾸 손바닥이 갈라져 자신을 덮쳐오는 형상을 했다. 호영은 제 손에 먹히는 상상에 눈을 감았다가, 다시 눈을 뜨고 손을 한 번 보았다가, 붉은 빛을 보았다. 붉게, 뜨겁게. 이 방을 태우는 그 작은 불씨를 보았다.


손이 저보다 커져서, 열이 뜨겁고, 붉은 색이 너무 선명해서. 호영은 그래서 제가 우는 것이라 생각했다. 시야를 가리는 눈물을 그대로 두었다. 그것이 저 타오르는 불빛을 조금이나마 가릴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제 슬픔을 덜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여, 눈물이 차오르는 대로, 흐르고 또 눈물이 차오르고 불빛이 어질러지고 방안의 공기가 뜨거워지게. 호영은 그것으로. 차오르는 연우를 향한 그리움을 가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마담이 뛰쳐왔다. 연기가 자욱한 그곳에서, 텅 비어버린 눈동자의 호영을 끌어냈다. C'light의 가장 구석진 곳. 그 누구도 찾지 않았던 곳. 호영의 전용자리라며 마담이 으름장을 놓았던 그곳에서, 호영은 그녀의 손에 이끌려 쫓겨나야 했다. 더욱 붉게, 붉은 빛이 좁은 공간을 채워간다. 아아, 안돼. 마담. 나는 저기에, 나는 저 곳에. 호영의 힘없는 손가락이 방 안의 불빛을 가리키고, 축 쳐진 팔다리로 허우적이며 앞으로 나아가려 발버둥을 쳤다. 나는 저 곳에. 나는 저 곳에.


그를 두고 왔어.


호영의 헤메이는 목소리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호영은 몸을 가누지 못했다. 유리는 소리치며 호영을 부축했다. 거의 헐벗은 여자들이 뛰쳐나와 함께 호영을 끌었다. 마담, 나는, 그곳에, 그를, 호영의 목소리가 공간에서 멀어져갔다. 나 참, 이게 무슨 소란이야. 여자들은 저마다 호들갑을 떨며 이야기했다. 호영은 한참을 불길을 바라보다, 제 손을 바라보았다. 이 손이 나를 삼켰다. 이 손이 그를 놓았다. 내 손이 그를 버렸다.


불은 금방 진정되었다. 무슨일이냐고 묻는 이들에게 눈치를 준 유리는 다시 평화롭게 카운터에 앉았고, 옷 매무새를 고칠 틈없이 여자들은 방으로 들어갔다. 호영은 찬 바람에 고개를 묻었다. 검은 구두가 호영의 눈앞으로 채워졌다. 호영은 느리게 눈을 깜박이다가, 그 손을 내밀었다. 진우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뭘 한거야. 진우는 망가진 호영의 손을 보다가 혀를 찼다. 잡은 손의 힘을 주어 호영을 반강제적으로 일으킨 진우는 C'light으로 이끌었다. 무슨 일인데. 진우가 잡은 손을 한번, 아직 텅 비어버린 호영을 한 번 본 유리가 작게 속삭였다.


"새로온 물건. 시험해본다구 가져갔거든."

"근데."

"근데는 무슨 근데야, 이별에, 그리움에, 약기운에. 제정신으로 버티는 사람이 누가 있어."


진우는 복도 끝 검게 그을린 방에 시선을 두었다. 앞으로 얘 약주지마. 호영의 손을 놓는다. 호영은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호영 역시, 떠지지 않는 눈으로 복도 끝을 보았다. 검은 자욱이 공간을 삼키고 있었다, 호영은 그 곳으로 손을 뻗었다가, 그제서야 차오르는 고통에 신음했다. 유리도 호영을 보며 혀를 찼다. 호영은 바닥으로 쓰러지듯 누웠다. 


"로비에서 이러지말구 일어나!"


유리의 앙칼진 목소리에도 호영은 일어서지 못했다. 천장 위로 둥둥, 검은 하늘 위로 둥둥, 연기가 가리고, 불길이 가려도 선명한 그 얼굴을 떠올리다가 눈을 가려도 제 머리 위로 둥둥 떠오르는 그 목소리를 그리다가 호영은 그자리에서 울어버렸다. 


호영은 마지막, 연우의 모습을 잊으려고 수번 노력했다. 머릿속에 깊이 각인된 그 미소가. 호영은 눈을 감아도, 또 눈을 뜨더라도. 그 모습이 차마 잊혀지지 않아 약에 취하기를 반복했다. 연우는 저를 보며 언제나 '괜찮다'이야기 했다. 그 목소리도, 그 웃음도. 눈을 뜨고 있을 때에도 눈을 감고 있을 때에도 연우는 언제나 제 곁을 머물며 '괜찮다.'하였다. 호영은 그 목소리가, 그 미소가 못내 그리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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