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끝나려고 해-이이언(eAeon)



(캐붕주의)


안녕이라고 이야기하면 웃기려나.


검은 밤 하늘 위로, 조각난 달이 떠 있고, 별이 흩뿌려져 있다. 효민의 목소리가 조용조용 밤의 바닷가를 굴렀다. 웃기지, 존나 웃기지.

맥주 캔이 손 안에서 찌그러진다. 아직도 손이 축축했다. 기억이 불현듯 떠올라 우리의 밤을 괴롭혔다. 


효민아, 우리.


효민이 뒤를 돌았다. 아- 형, 표정이 그게 뭐야. 알고 있었던 거 아니였어? 달이 가려졌다. 올려다보니 이효민 뒤로 별이 흩뿌려져 있다. 

변한 듯, 그대로인 얼굴이다. 아, 너는 괜찮구나, 싶었다. 나는 나처럼 살 수 없었는데 너는 딱 너처럼 살고 있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너처럼.


잘 지냈어?

...

나는 네가..

...

누누이 말하지만, 그 좆같은 불쌍한 척 좀 안하면 안되냐?


효민아, 나는 네가.


예전과 같이 주머니에 두 손을 넣은 채, 그때와 같이 눈을 마주친다. 형도 이제 형답게 살아, 되도 않는 짓 하려고 들지 말고. 다시 시선을 끊어버린 맥주를 한 모금, 그리고 뒤를 돌아 빈 캔을 멀리 던졌다. 밤이 길어지고 있었다. 기억이 조각이 되어 괴롭혔다. 아직도, 내 손에는, 그때의, 기억이.


나는 네가.


아무도 없는 새벽에 모래사장을 덮는 잔잔한 파도소리. 그리고 너는 모래사장 위로 발자국을 남겼다. 


나는 효민아,

나에게 너는.


손이 축축해졌다. 효민이 무어라 더 말을 했지만 머릿 속에서 재생되는 그때의 기억에, 들을 수 없었다. 


효민아, 너 위험한데, 어, 효민아, 야 이효민, 

칼을 들은 자의 앞에서 한량하게 웃던 너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효민아, 네가 사라지면.


'와, 미친새끼. 진짜 찔렀어.'

'어때, 폭탄보다 짜릿하지, 응?'


내 세상이 끝나.


나는 아직도 그날의 기억으로 나를 괴롭힌다. 얼굴도 모르던 사람은 뱃가죽이 난도질 당한채로 내 주변을 맴돌았다. 학생때부터 주변을 맴돌던 얼굴이 무너진 화학선생님과 함께였다. 손이 덜덜 떨렸다. 이제 그만하자, 형. 재미없어졌어. 무너져가는 나를 보며 말했던 너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네가 이미 내 세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검은 밤 위로 색색이 불꽃이 터졌다.


술 한잔 할래?

술?

어차피 마지막이니까.


효민아, 세상이, 끝나려고 해.

불꽃이 사라졌다. 다시 밤은 고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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