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횸정] 첫문장 전력 60분
2016. 2. 2. 11:06흘러 넘쳤다. 그는 언제나 넘쳤고 나는 그에 비해 모자람이 많았다. 그는 생각하는대로 표현했고, 나는 생각함을 감췄다. 그러던 어느 날에 그가 감정을 숨기고 나의 감정이 넘치다 못해 흘러넘쳤던 그때에. 그는 당황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하였고, 나는 처음 겪는 생소한 감정을 뒤늦게나마 숨기려고 아등거렸다. 그니까, 나는, 내말은, 아니야. 아니야.
'좋아해.'
네 뒷모습을 향해 삼켰던 말이 형체를 갖는 순간은 그랬다. 밖은 시커먼 바다가 끊임없이 물결치고, 검은 하늘 위 조각난 별과, 간간히 터지는 불꽃. 그리고 그 밑의 우리. 파도가 일었다. 찬 파도가 몇번이고 우리의 발치까지 다가왔다가 부서진 감정을 머금고 뒤로 물러서기를 반복했다. 아니야, 그니까. 내말은.
네 표정은 순식간에 일그러지고 우리는 파도에 휩쓸려버린다. 아니, 아니야. 내말은.
숨이 턱턱 막혔다. 세상은 까만데 내 머릿속은 하얗게 비워졌다. 머릿속에서도 끊임없이 파도가 일었다. 몇번이고 내가 뱉은 말을 지우려고. 채 내가 써놓은 낙서까지 닿지 못한 바다는 다시 한 번 힘차게 내달리고, 또 한 번 나의 목소리는 지워지지 못한채 뒤로 물러나버리고 만다.
부러 크게 한숨을 쉬었다. 널 향하던 눈빛을 돌렸다. 바다, 그 저 끝의 점을 두고 눈을 깜박였다. 어서 세상이 색을 비추었으면 좋겠다. 까만 바다와 하늘을 보며 시커먼 내 마음을 위해서 아직 떠오르려면 멀고 먼 해를 꿈꿨다. 파도는 끊임없이 다가왔다. 나는 눈을 감고 실제의 바다가 방금 전의 나를 삼키는 상상을 했다.
"이건 아니지 않나?"
그 칠흑같던 시간 틈에서 처음으로 터져나온 네 목소리가 평소와 다르게 차분해서. 박동수는 차오르고 나는 한걸음 물러섰다. 바다가 곧 나를 삼킬 것 같았다.
"형, 나 좋아해?"
"씨발."
"그러면 안되는 거잖아."
"네가 그러면 안되지, 씨바알."
몇번이고 예상했었지, 그래 나는 네 모습을 몇번이고 그렸었다. 욕을 내는 모습, 화를 내는 모습 그리고 한숨을 내뱉고, 우리가 끝나는 순간들. 나는 모든 상황을 상상했다. 우리의 만남이 비이상적이었던 것 만큼 사랑도 비이상적이었고, 또한 이별도 비이상작일 것이라고 나는 수많은 그림을 그리며 생각했다. 그래서 문득 바다에 취해 뱉은 내 고백에 의한 끝도. 나에겐 삼켜왔던 시간만큼 이미 내게는 익숙한 그림이었다.
"별거아냐"
그래서 이미 내 답도 정해져있다.
"그랬다고."
마음을 숨기는 것은 어렵지않다. 나는 벌써 몇년이나 그것을 해왔다. 아무렇지 않게, 눈 한 번 느리게 깜박이고. 상대의 눈 한번, 그리고 저 먼 곳을 한 번.
"말도 안되지, 우리 사이에선."
눈을 느리게 한 번,
네 눈동자를 한 번.
바다 저 먼 곳을 한 번.
그리고 바다 저 깊은 곳에 숨었을 해를 떠올렸다. 이 척척한 우리 사이에서 색을 입혀줬으면 했다. 그리고 네 실소가 터지고 다시 우리로 돌아온다.
"형이 그러면 안되지."
"응, 나는 그럴리 없지."
또 한 번 불꽃이 검은 하늘을 수놓았다. 바다는 끊임없이 밤의 모래를 적셔왔다. 네가 웃는 소리가 조용한 바다 위를 굴렀다.
"형, 근데."
마지막의 불꽃이 터졌다. 팡하고, 손을 떠난 불꽃은 하늘 위에서 가지를 뻗어 수놓는다. 그 조각들은 오래 머물지 못하고 바다 위로 떨어지는 형상을 하고, 바다는 그것을 삼킨다. 나는 또 눈을 감았다. 불꽃이 끝나자 너는 말을 이었다.
"그걸 왜 이제 말해."
눈을 뜨고, 네 손에 들려져 있던 불꽃놀이는 어느새 꼬마의 손에 들려져 있었고 네 목소리는 금방 사라졌으며, 불꽃은 검은 우주가 삼키고, 네 잔상은 바다가 삼켜버린다.
"그러게."
'네가 그러면 안되지, 씨바알. '
"그러게."
바다가 너를 삼키고
내가 삼켜온 감정들은 몇 번이고 너를 그린다. 너는 나를 원망하지 않을 것을 안다. 그래서 나는 널 그렸다. 하얀 머릿속에도, 까만 밤하늘에도, 아무도 없는 백사장 위로도. 너와 와본적 없는 바다에서 터지는 불꽃으로 인한 색을 네게 입혔다가 다시 또 검은 바다로나마 널 삼켰다.
내 감정이 흘러넘쳐 고백했을 때, 사실 그 때에 네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 뒤의 우리가 너무 선명해서. 눈을 감던 네 마지막 그 목소리가 유난히 색이 찬란해서. 나는 건조하게 눈을 감았고 너는 몇번이고 나를 따라다녔다. 그리고 나는 그런 너에게 몇번이고 감정을 뱉었다.
바다가 발끝을 적신다.
나는 한 발자국 물러섰다.
좋아해.
별거아냐.
그랬다고.
감정이 흘러넘쳤으나, 발치까지 닿은 바다가 몇번이고 삼켜서. 아마 너에게는 닿지도 못할 것이다. 그 흑색의 광경을 보다가 발걸음을 옮겼다. 밤바다는 차가웠다. 꼭, 그날의 우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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